15일 아침, 마을 골목은 태극기와 태극 우산, 반짝이는 비눗방울로 물들었다. 어린아이부터 청소년, 중장년, 그리고 80대 어르신까지 세대를 넘어 함께한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30도가 훌쩍 넘는 무더위 속에서도, 손에 비눗방울총을 쥔 아이들과 우비 차림의 어른들은 곧 울려 퍼질 만세 함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한독립만세!” 삼창의 함성이 울려 퍼지자, 모조총을 든 독립군 대장을 선두로 수백 명이 골목을 메웠다. 박병규 광산구청장도 비눗방울총을 들고 대열에 합류해 힘차게 구호를 외쳤다.
이날 행사는 대성여고, 경신여고, 광주서림교회, 고려인마을주민관광청 해설사, 월곡2동 통장단 등 다양한 단체와 기관의 참여로 더욱 풍성해졌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 전투 재현 거리극이었다. 예년에는 물총 전투로 표현했지만, 올해는 최근 큰 수해를 배려해 ‘비눗방울 전투’로 변신했다.
이윽고 일본군 역의 참가자들이 워터건을 발사하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원한 물줄기를 맞은 만세 행렬에서 웃음꽃이 터졌다. 곧이어 독립군과 시민들이 비눗방울총으로 반격해 ‘일본군’을 몰아내자 함성과 환호가 골목을 가득 메웠다.
이 퍼포먼스는 1920년 6월, 중국 지린성 봉오동에서 벌어진 홍범도 장군 휘하 독립군 500명과 일본군 1,300명이 맞선 역사적 전투를 기념한 것이다. 고려인마을은 매년 3·1절과 광복절에 이색적인 방식으로 만세운동을 재현하며, 국내 대표적인 독립운동 행사로 자리 잡았다.
인근 홍범도공원에서는 고려인마을 어린이합창단, 청소년오케스트라, 아리랑가무단이 함께한 음악회가 열렸다. 고려인마을 주민과 전문 예술가들이 무대에 올라 ‘고려아리랑’을 비롯한 노래와 춤으로 광복의 기쁨과 의미를 전했다.
행사장 한쪽에서는 홍범도 장군 무드등, 태극기 자개 열쇠고리 만들기, 독립운동가 인생네컷 촬영 등 다채로운 체험 부스가 운영돼 가족 단위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안겔리나 양(14)은 5살 남동생과 함께 행사장을 찾았다.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고려인이다. 광주에서 중학교를 다니고 있다. 독립군의 후손 고려인이라는 게 정말 자랑스럽다.” 고 말했다.
‘아리랑가무단’ 공연팀으로 무대에 선 김 스베틀라나 씨(63)는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노래를 한국에서 부르니 꿈만 같다” 며 “ 조상의 땅 한국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다.” 고 전했다.
박병규 광산구청장은 “올해는 수해 피해를 입은 지역을 배려해 물총 대신 비눗방울총을 준비했다.” 며 “고려인과 주민들이 하나가 되어 즐기면서, 홍범도 장군 동상을 보며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는 날이 되길 바란다.” 고 말했다.
올해 행사는 재외동포청과 광산구가 공동 주최·주관하고 고려인마을이 협력했으며, 고려인마을가족카페는 중앙아시아 전통빵을, 광주지방보훈청은 고려인 동포 참가자들을 위한 기념 물품을 후원했다.
려방송: 양나탈리아 (고려인마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