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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희망으로 쓴 수능 뒷 이야기" - 전주소년원 보호소년 8명, 새벽을 가른 9시간의 수능 대장정
  • 기사등록 2025-11-14 10:2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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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법무부(정성호 장관) 전주소년원에 재원 중인 보호소년이 8명이 11월 13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응시하는 뜻깊은 발걸음을 내디뎠다. 

 

각기 다른 아픔을 가진 소년들이 다시 책을 들고 인생의 전환점을 향해 나아간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 보호자를 대신한 직원들의 헌신과 소년들의 뜨거운 의지가 어우러지며, 이날의 도전은 단순한 시험 응시를 넘어 새로운 삶을 향한 희망의 출발점이 되었다.

 

11월 13일 새벽, 전주소년원 생활관 복도에는 이른 시간답지 않은 발걸음이 분주히 오갔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응시하는 보호소년 8명을 위해 직원들이 평소보다 4시간이나 이른 새벽에 출근한 것이다. 소년원이라는 닫힌 공간을 나와 세상과 마주하는 단 하루. 이날을 위해 수개월 동안 포기하지 않고 책을 붙들어 온 소년들에게, 오늘은 삶의 갈림길이자 다시 태어나는 첫 관문이었다.

 

아침 7시, 보호자 없는 아이들의 '보호자'가 되다. 직원들은 호송 준비를 위해 새벽 6시부터 포승과 안전 장비를 점검했다. 그러나 장비보다 더 먼저 챙긴 것은 소년들의 마음이었다. 호송을 위한 장비를 점검하는 동안에도 긴장한 소년들을 향해 "괜찮아", "너무 긴장하지 말고", "우리가 끝까지 함께 하니 마음 놓고"라며 따뜻한 격려를 건네며 보호자의 역할을 대신했다. 포승하고 수갑을 가리는 천을 정리하는 손끝에는, 소년원 직원이라는 직무 이전에 '아이들의 보호자'가 되고자 하는 진심이 배어 있었다.

 

07시 40분, 호송 차량 두 대에 나눠 탄 소년들은 1::1 감호 속에 조용히 고사장으로 들어섰다. 고사장에 입실 후 직원들이 마지막으로 포승을 해제하자, 비로소 그들은 수험생의 모습이 되었다.

 

08시, 수험표를 받아든 소년들의 손이 한동안 멈췄다. 긴 한숨, 굳게 다문 입술, 떨리는 손끝. 그 안에는 단순한 시험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김ㅇ민(18세)은 중학교 이후 불량교우와 어울리며 가출과 학업 중단, 절도를 반복하다가 소년원 입원 이후 다시 학업을 이어가며 "이번만큼은 제대로 해보고 싶다"라며 다짐해 왔다. 조ㅇ승(19세)는 초등학교 때 부의 체벌을 피해 가출한 이후 우범 환경에 노출되고 휴대폰 판매 사기에 연루된 아픈 과거가 있지만, 소년원 입원 이후 정규 수업에 꾸준히 참여하며 "인생을 다시 설계하겠다"라는 의지를 보여왔다. 이ㅇ호(18세)은 17세 무렵 학업 문제로 부모와 갈등하며 가출하고, 분노 조절의 어려움까지 겹치며 폭력 사건에 연루되었지만, 소년원 입원 입후 안정적인 생활을 회복하며 "이번 시험을 계기로 다시 공부하고 싶다"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들은 사연은 다르지만, '과거를 넘어서고 싶다'라는 진심 어린 의지는 같았다.

 

첫 교시 국어 시험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긴장한 소년이 손을 들었다. "저... 화장실 좀..." 직원들은 즉시 1:1 계호 이동을 지원했다. "혹시 또 화장실 갈 사람?" 직원들의 세심한 지원과 배려 탓에 시간이 지날수록 소년들의 불안감은 줄어들고 안정감은 높아졌다. 국어시험, 수학 시험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직원들의 동행은 멈추지 않았다. 시험실 안팎에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묵묵히 기다림을 이어갔다.

 

오전 시험이 끝나고 12시 점심시간, 직원들은 교대로 식사하면서 소년들에게 '꿀맛 같은 도시락'과 시원한 음료를 전달했다. 잠시지만 소년들은 위축된 마음을 내려놓고 오후 시험을 대비할 수 있었다.

 

"사람 인생에는 몇 번의 큰 기회가 온다. 오늘이 그 한 번일 수 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 파이팅!" 유천성 교무계장은 오후 영어시험을 앞두고 잔뜩 긴장한 소년들에게 자신의 시험 경험담과 함께 소년들을 꿈을 응원했다. 소년들은 고개를 깊게 끄덕이며 다시 한번 결심을 다졌다. 마치 각자 묶여 있던 과거의 그림자를 떨쳐내듯, 묵묵히 자리로 향했다.

  

모든 시험이 끝나고 호송 차량에 오른 소년들은 말없이 창밖을 응시했다. 누군가는 눈물을 훔쳤고, 누군가는 입술을 깨물며 마음속 다짐을 되뇌었다. '정말...수고했다" 소년원 도착 후 직원들은 소년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었다. 그 말 한마디에 소년들은 처음으로 미소지었다. 긴장과 낯선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시험을 마친 소년들의 얼굴엔 안도와 희망이 함께 묻어 있었다.

 

과거의 실수, 폭력, 가출, 좌절, 분노, 경제적 어려움... 각기 다른 이유로 무너졌던 삶이었지만, 이날만큼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학생의 얼굴이었다.

 

김행석 원장은 "이번 수능 응시는 단순한 시험 참여가 아니라, 아이들이 과거를 딛고 새로운 미래를 선택하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의미 있는 여정"이라며 "앞으로도 학업.심리. 정서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이 소년들이 건강하게 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이날 소년원에는 누구도 포기하지 않은 어른들과, 처음으로 포기하지 않은 소년들이 있었다. 소년원이라는 폐쇄된 공간 속에서도 희망은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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