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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테일러에게 배우는 생명존중과 치유농업 - 전주기전대학 치유농업과 최연우 교수
  • 기사등록 2026-10-23 08:5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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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미국의 환경철학자 폴 테일러(Paul W. Taylor, 1923~2015)는 식물과 동물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가 인간에게 주는 유용성과 관계없이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고 보았다. 그는 인간을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지구 생명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식했다. 이러한 생명중심주의 철학은 식물과 동물을 활용하는 치유농업에서 생명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기준을 제시한다.

  

폴 테일러는 1986년 출간한 『자연에 대한 존중(Respect for Nature)』에서 생명체를 '목적론적 삶의 중심(teleological center of life)'으로 설명했다. 각각의 생명체는 고유한 생물학적 특성에 따라 생존하고 성장하며 자신의 삶을 유지한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고유한 선(good of its own)'이다. 생명체마다 자신의 생존과 성장에 유익하거나 해로운 조건이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그는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과 다른 생명체의 관계를 설명하고, 자연을 존중하는 네 가지 윤리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는 생명체에 해를 끼치는 행위를 삼가는 위해 금지이다. 둘째는 야생 생명체의 자유로운 삶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것을 피하는 불간섭이다. 셋째는 야생동물의 신뢰를 이용하거나 기만하는 행위를 금하는 신의의 원칙이다. 넷째는 인간이 생명체에 끼친 피해를 회복할 책임을 강조하는 원상회복적 정의이다.

  

이러한 원칙은 치유농업에서 생명체를 대하는 태도를 생각하게 한다. 치유농업에서는 식물을 심고 가꾸는 과정에서 참여자의 정서적 안정과 성취감을 기대한다. 그러나 생명존중의 관점에서는 참여자의 만족과 함께 식물의 생육 상태와 필요를 이해하는 경험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원예활동에서 잎이 시들거나 생육이 불량한 식물을 발견했을 때 참여자가 원인을 관찰하도록 할 수 있다. 토양의 수분 상태와 햇빛, 온도, 뿌리의 상태 등을 확인하고 식물에 적합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참여자는 자신의 기대에 따라 식물을 다루는 것에서 벗어나 식물의 생육 특성에 맞추어 행동하는 경험을 한다.

  

동물을 활용하는 치유농업에서도 생명존중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난다. 동물과의 접촉이 참여자에게 즐거움을 주더라도 동물이 불편함을 느끼거나 스트레스 반응을 보인다면 활동을 조정해야 한다. 동물의 휴식 시간과 행동 특성을 존중하고 건강 상태에 맞추어 교감하는 방식이다. 참여자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의 욕구와 다른 생명체의 필요를 함께 생각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생명존중의 철학은 치유농장의 생태환경을 이해하는 활동으로도 확장할 수 있다. 텃밭에는 재배작물 외에도 다양한 곤충과 미생물, 야생식물이 존재한다. 이들은 서로 다른 생존 방식으로 살아가며 복잡한 생태적 관계를 형성한다. 참여자가 꽃을 찾아오는 벌과 나비를 관찰하거나 토양 속 생물의 역할을 이해하는 활동은 인간을 생명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

  

특히 폴 테일러의 철학에서 주목할 부분은 생명체의 가치가 인간의 평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식물과 눈에 띄는 꽃이 없는 식물, 사람에게 친숙한 동물과 그렇지 못한 동물 모두 고유한 삶을 지닌다. 이러한 관점은 치유농업 참여자가 생명체의 외형이나 유용성보다 그 존재 자체를 존중하는 태도를 경험하도록 한다.

  

물론 농업은 작물을 재배하고 수확하는 과정에서 생명체에 개입하는 활동이다. 이 때문에 야생 생명체의 자유로운 삶을 강조한 폴 테일러의 철학을 농업 현장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다만 그의 생명중심주의는 인간의 필요와 다른 생명체의 이익이 충돌할 때 피해를 최소화하고 생명체의 고유한 가치를 존중하는 윤리적 기준을 제공한다.

  

치유농업에서 생명존중은 프로그램의 설명이나 교육 목표에 머물기보다 실제 활동에서 구현될 때 의미가 커진다. 참여자가 식물의 생육 조건을 이해하고, 동물의 행동을 존중하며, 농장에 서식하는 다양한 생명체의 삶을 관찰하도록 하는 것이다. 폴 테일러의 철학을 바탕으로 치유농업은 인간의 건강을 위한 자연의 활용과 다른 생명체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함께 실천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최연우. 2026. 엘리너 오스트롬의 공유자원 이론과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10.15.) 

최연우. 2026. 반다나 시바 종자와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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