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세상
-
쇠똥구리 그가 꿈꾸는 삶은 그저평범하게 살아가는 일이다 몸의 온도가 상승해야만 퍼지는 날개,추락을 거듭 하면서도 쇠똥을 찾아 나서는 일이 삶의 전부이다 사람들은 쇠똥을 보면 몸을 움츠리며 피해다니지만그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밥이자생명이기 때문이다 종일 시간의 톱날을 세워 빚고 빚어저물녘 태양을 등에 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2021-12-22 김동국
-
항구, 닻을 내리다 축제의 불빛 따라 흘러와슬픔을 버리기에 좋은 이곳 설렘은 빈티지로 색이 바래가고닻배의 시동소리 밤을 새워 울먹인다부둥켜안은 눈물 헤어지기 싫은 아침을 밀어내며출항의 새벽안개 속 아낙의 모습 한 점이 될 때까지스카프와 오색 깃발 흔들어 대며 물보라로 발버둥,투박한 말투는 어느새 본새 되고익숙한 뱃고동 소리에 소금꽃 핀 ... 2021-12-16 김혜자
-
사슴뿔이 돋을 때 코 흘린 자식만 있다고 합니다엄마는 없다고 하네요꼭대기 번지에 이사를 왔다고 합니다급식소가 있는 곳을 먼저 알아야 하고 잡화상도 있는지 물어봐야 할 것 같은 번식처입니다언젠가 건초를 들고 가는 그분과 만났네요국수를 들고 가는 나를 보고 웃습니다슬쩍 웃어줬습니다아, 동질의 불꽃이 튀었는데 그분의 머리부터수사슴이 되더... 2021-12-09 김동국
-
동백 숲에서 동박새 연둣빛날개에 묻어온 봄붉게 물든꽃송이로 피어나고 어서 와기다렸다는 듯명우가동백꽃 속에서수줍게 웃는다 몸이 아파 시골 학교로전학 가던 날1년 후를 약속하며- 건강해져서 다시 올게손 흔들며 떠나던동백숲 명우가 웃는 자리마다동백꽃이 햇살 아래덩그러니 눕는다 2021-11-24 김동국
-
달맞이꽃. 2 당신이 나비되어 날으던 날 머뭇거리며 돌아서던 그 순간떨리던 마음의 온도를 찾아헤매입니다 밤마다 무연하게 번져 오는들판을 뛰다 걷다 합니다빛을 뿌리는 별은 반갑지않습니다한 사람을 위한 노래를 부르며그때처럼 뛰던 심장을 만나고 싶어온밤을 밝히고 있습니다 당신은 프리즘입니다내 모든 아픔이 당신을 통과하면 사랑이 됩니... 2021-11-18 김동국
-
사연이 흐르는 중고책방 모든게 이분법적으로 구분 지을 수는 없지만너덜너덜 헤어진 시간과 즐거움이 묻어 있는 것들모두에게 소중한 추억들이 있는 것들누군가를 다시 만나좋은 연이 되기를 바라는 곳에서형광등 아래에서 오늘도 편가르기를 한다 뜯기고 찢겨진 과거를 간직한 헌책은 이중고를 지닌 이 중고책은 폐지를 지나새로운 자원이 되기를 바라면서오늘... 2021-11-05 김동국
-
속삭임 꿈을 모르지바람에 맞서며 남아있는 별들이반짝이며 속삭입니다. 세월은한 줄 뒤에서 밤 사이세 줄 앞서 가는 것구름 한 점 흐르며 속삭입니다. 얼어 붙은 마음이제는 내려 놓아라살아 있다는 것은섬세한 자연의 일상일 뿐여명 속으로 사라지는 물안개가그렇게 속삭이며 떠납니다. 2021-10-29 김동국
-
20년 뒤 나의 굽은 등 그 위에 얹혀 위태위태한 파싹 늙은 해낙타 눈썹 같은 애잔한 그리움으로 뒤돌아본다 환한 햇살 눈에 담고 폴짝폴짝 뛰어양팔 벌려 안겨오는 손자 손녀들 꽃처럼 예쁜 아이들아시처럼 소중한 내 자손들아 내가 너희들을 안아주기에는 너무 멀리 와 있구나 2021-10-27 김동국
-
가야산 벗은 몸뚱이 되어 가야산 정상에 섰다승천을 위한 용이 몸을 푸는 형세처럼영산강은 묵묵히 도도하게 억겁처럼 흐르고동서남북 氣가 가득한강물 위로 마천루의 상전벽해혁신도시는 신기루를 이룰 기세라 무등산이 손에 잡힐 듯멀리서 내려다보고 다시(多侍) 신걸산에는 백호 임제 아저씨詩 읊고 있을 거나 목포 가는 강물은 그림 같기만 ... 2021-10-25 김동국
-
추일서정 성하의 녹음이 불볕처럼 타오르더니/거센 바람에 낙엽은 어지럽다한바탕 축제에 물밀던인적은 흔적이 없는데가을비 내릴 듯 말 듯인간사 여로가 세상을 뒤 집네살아온 날이 얼마나 되었고살아갈 날이 이 또한 뭐꼬가을은 턱 앞에 일렁이는데겨울을 재촉하는 비바람나그네 길 앞일이 느긋한양총총히 서둘러 길을 떠나네아 사람의 가는 길... 2021-10-11 김동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