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설(春雪)을 읽다

강 건너보리밭에눈 설핏내렸다 풀빛 잉크뽑아 쓴 펜촉의벼린 문장 오늘도춘래불사춘,늘 그랬다세상은

2021-03-19
벽지를 뜯다

지은 지 백 년이 넘은 고향집여러 겹으로 덧바른 벽지를 뜯어낸다 한 겹 한 겹 뜯어낼 때마다희뿌연 먼지 속에서 박제된 시간들 되살아난다 할아버지 담뱃대 ...

2021-03-15
찔레꽃 화관

엄마를 어머니로 부르는 순간부터엄마는 그리움 그대로였다 총총하던 총기를 내려놓고꽃잎 따먹던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콧노래 흥얼거리다하얀 삐비꽃 천지...

2021-03-09
눈에 보이는 세상

눈 하나 믿고세상을 보았네 때론 당연하고때론 만만한 것들, 보이는 것이 다 법이고보이는 것이 다 선일 때 눈 하나 믿고눈을 감았네그렇게 당신들을 잊었네 ...

2021-03-04
파종명 (破鐘鳴)

조상님 원혼이 쌓이고 쌓여뼈마디마다 뒤틀리는 불벼락오로지 한 길 조국광복그 어둠의 터널 피눈물이 북풍한설에 역 고드름 되었더니이제 기약 없던 훈풍에...

2021-03-01
매천(梅泉)을 그리며

인(仁)으로 벼린 마음 붓 삼아 쓴 절명시를댓잎 끝에 바람이 추상같이 읽고 있다강산은 열 번 변해도인간사 그렇지 못해 나라 민초 걱정보다 진보 보수 더 따...

2021-02-25
조용한 폭력

모호한 바이러스에 흰 마스크를 귀에 걸며하나밖에 남지 않은 목숨들을 의존한다 집집마다 빗장을 걸어 두고심장 구르는 숨비소리를 내고 있다죽은 시인의 ...

2021-02-19
덕유산 상고대

뿌리에서 올라온 순화된 상념들이실핏줄처럼 퍼져 있는 나목,그 가지 끝마다조롱조롱 달려 있는 은방울을 확대해보면가장 채도가 맑고 순수한 우주의 눈빛이...

2021-02-16
거울

숨어서 흐른 세월세상 밖으로 끄집어 낸 거울나는 거울을 보고 거울은 나를 보고 있네 수 삼년질척거리며놓친 세월이 더 많은 남자의 가슴나는 지금 여기에 ...

2021-02-08
옥고

나는 황무지에서 허덕이다몇 번을 쓰다 지운 악보에서 낮게 흐르는 음률 찾아 운명처럼 앉혔지 매일 새벽 짓밟은 태양 보며무엇이 아름답고 생의 전부였나를 ...

2021-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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